작은 방 한 켠에서 조용히 말씀을 꺼내시는

양옥모 선생님


국가를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자 

10년째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공로가

인정돼 얼마 전, 희망나눔인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증조부부터 아버지까지 3대가

독립운동을 하셨어요."


증조부께서는 경기도 양평에서 인쇄소를

운영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지만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3·1운동 당시 태극기와 현수막을

직접 만들어 면사무소 앞에서 나눠줬고


할아버지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1920년 김좌진 장군이 이끈

청산리 전투에 참여해

좌측 어깨에 총상을 입으셨어요.


이후 신흥무관학교 건립과 독립군의 군량을

기부하다 총상이 악화되어 중국 하얼빈에서

숨을 거두셨죠..



아버지(양승만 선생)도 불과 16세에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1927년 신숙 선생이

설립한 신창학교 교사로 계시면서

청년들을 위한 민족교육에 헌신하셨고

한국 독립군 상사로 활동하며

항일 투쟁운동을 하셨어요..


임시정부가 환국하고 나서도

중국에 남은 동포들을 마저 귀환시키라는

임무를 받으셨는데 자신의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해방 이후 시간이 흘러 1986년에서야

조국에 돌아오셨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로

목숨을 잃으셨어요.


그 공훈을 인정받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고

2018년에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폐가 세워졌어요..



중국 하얼빈에서 어렵게 자란

양옥모 선생님은 한국으로 귀국해

지인 집을 전전하다 지금은 서울에

작은 단칸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현재 기초생활수급비와 유공자 연금 등

월 100여만 원으로 보증금 1천만 원에

월세 45만 원을 내고 약 70여만 원으로

생계를 꾸려가지만


가난하고 힘들게 사시는 분들을 돕고 계십니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정부지원금 50만 원을 코로나19와

싸우는 의료진을 위해 써달라며 기부했고

이 공로로 양옥모 선생님은

2020년 노인의 날을 기념해

 서울시장상을 받았기도 했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 모국인

대한민국에서 봉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에겐 큰 기쁨이자 자랑이에요.”


“종종 독립운동가 후손분들을

모임에서 만나는데

다들 하나같이 생활이 많이 힘드세요.."


"저를 위해서 기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금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저보다 더 어렵게 사시는 분들을

도와주셨으면 해요."

(양옥모 선생님 인터뷰 내용 발췌)


‘2021년 국가보훈대상자 생활실태조사’에

응답한 독립유공자 후손 446명 중

15명(3.4%)이 비닐하우스, 판잣집,

비거주용 건물 등 불안정한 주거 환경에서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 중에는

돌봐줄 가족도 없어 좁고 허름한 방에서

빵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분들이 많습니다.


겨울엔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비닐 한 장으로 막을 정도로

주거 환경이 열악합니다.


의지할 곳 없이 현실의 벽을 마주한

독립운동가 후손분들을 위해


"여러분들의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부탁드립니다."




보내주신 후원금은 독립운동가 후손분들에게

생계비, 주거환경 개선 등에 지원됩니다.


[무통장 입금안내]


(기업은행) 148 - 013356 - 01 - 151

예금주 : 대한적십자사


입금시 '성명' + '감사' 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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